지난 주말, 큰 아이의 유치원 방학 마침을 기념할 겸, 가족 영화 관람을 시도했다. 아이의 연령 상 가족영화라고 해도 볼 수 있는 장르는 애니메이션에 국한되어 있다. 이미 '미니언'은 엄마와 본 터라 픽사의 '인사이드 아웃'을 관람하였다.
(이하 스포일러 주의)
제목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영화를 관람했었는데, (끝내 시원하게 제목의 의미를 깨닫지는 못했지만,) 내제된 자아의 외적 발산(또는 사춘기-중2병-의 성공적인 경과 정도를 의미하는 표현이 아닐까 싶었다.
극의 주인공인 여아아이 '라일리'는 미네소타의 소도시에서 태어나 추운 날씨와 함께 10여년을 보내고, 아버지의 사업을 따라 서부의 샌프란시스코로 이사오게 된다. 낯선 환경과 약간의 불운에 심한 감정변화를 겪은 '라일리'는 이 모든 책임이 부모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혼자서 '고향'인 미네소타로 돌아갈 계획을 충동적으로 세우게 된다. 버스 터미널에서 버스가 출발하려던 찰나, 라일리는 잠시의 일탈을 벗어나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잘 적응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스포일 극강!)
여기까지는 극의 외적 이야기에 해당하고 액자 내부에서는 각 장면마다 라일리의 머리속에서 '기쁨', '슬픔', '소심', '까칠', '버럭' 이라는 내면의 성격 요소가 만들어내는 에피소드가 이야기의 핵심이 된다. 예를 들어 라일리가 항상 행복한 상태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슬픔'의 행동을 제한하는 '기쁨'의 독단이라던가, 이유없이 조정장치가 고장(아마도 사춘기의 시작?)나고, 이를 고치려다 기억 '구슬'의 저장소에 '기쁨'과 '슬픔'이 떨어지는 장면 등이다. '기쁨'이 중앙 조정 센터(두뇌?)에 없기 때문에 라일리가 매사 무기력함을 느끼고 '까칠'과 '버럭'으로 감정이 치우쳐지는 장면에서는 사춘기의 심리 상태를 개연성있게 풀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특히, 클라이막스에서 '행복'이라는 감정은 단순히 '기쁨'의 영역을 넘어서 다른 무수한 감정이 빗어낸 결과(극에서는 '슬픔' 후의 카타르시스를 예로 들었다)라는 결론에 이르면 이 영화가 단순히 아동 혹은 가족용 오락 영화가 아니라 잘 풀어낸 한 편의 심리극이라는 생각이다. 단색의 구슬이 아니라 여러 색깔이 섞인 구슬이라니... 기막힌 표현!!
한편, '빙봉'이라는 상상의 존재는 극에 또다른 재미와 감동을 선사하였는데, 어릴적 품었던 상상의 나래가 성인이 된 이후 잘 나타나지 않거나 아예 사라진 이유가 빙봉의 '비극적이지만 감동적인 희생의 결과(영화에서 확인하시라)'라니 울컥하는 마음이었다.
아무튼 전체적으로 잘 짜여지고(스토리) 그려진(그림) 영화였다. 이 영화를 통해 아이의 감정상태를 다시 한번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와 대화의 실마리를 잡았고, 더불어 성인이 된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의 심리상태에 대한 단서도 얻을 수 있었다. (나는 버럭이, 너도 버럭이)
이제 더 이상 애들을 보며 '니 머리엔 뭐가 들었길래.' 란 푸념을 안 해도 되는 영화.
다시 보고 싶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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