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서비스가 핸드폰 안(?)으로 들어가고, 세상사 모든 일을 핸드폰 사이즈에서 처리하다 보니 그 작은 화면 안에서도 사용자의 이목을 끌만한 무언가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인식하게 되었다. 같은 종류의 일을 하는 서비스가 기껏해야 1-2개 수준이던 아날로그 시대에서 이제는 하루에도 수십 개의 같은 일을 하는 서비스가 생기기도 하고 그만큼 없어지기도 한다. 말 그대로 무한 경쟁의 시대.
옛날 서비스는 기능에 충실하고, 한 화면에 중요한 대부분의 것을 보여주면 되었다. (물론 그 당시도 unix의 small is beautiful 철학이 있었고, google의 단촐한 검색 화면이 이슈화되기도 했다.) 요즘은 간결한 화면에 주요한 것만 보여주거나 사용자의 편의성을 따지는 정도가 서비스의 성패를 좌우하는 척도이다. 그만큼 '디자인'에 목숨을 거는 시대라는 것이다.
나를 포함 시스템 개발자 출신들은 대체로 기능 완성에 집착하지 미적 감각과는 거리가 멀어서 요즘 트렌드에 발 맞춰 가려면 수박 겉핧기라도 '디자인'에 관해 알아야겠다는 심정으로 이 책을 열었다.
책은 디자이너 경력 10여년에 글쓰기와 커뮤니티 운영을 하는 작가의 연재글을 모아 책으로 낸 것이다. (해당 출판 프로젝트의 대상이라 한다.)
책을 시작하며 기대하기는 이 책을 통해 디자인에 관해 무지한 나를 느끼고, 현재 나에게 필요한 디자인적 관점 혹은 감각을 1이라도 덧붙이고자 한 것이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드는 생각은 글 제목에 언급한 대로 '디자인 만물설'에 관한 여러 편의 강의를 들은 느낌이다.
1장에서 UI와 UX를 설명할 때까지만 해도, [토스]나 [넷플릭스]의 디자인적 요소를 설명할 때까지만 해도 보통의 디자인 관련 책인줄 알았다. 그런데 점점 '기획'과 '마케팅'을 넘나드는 해설이 나오더니 2장에서 개발 방법론에 관한 설명에 이르러서는 세상의 모든 서비스와 프로젝트가 '디자인'을 중심으로 움직인다고 믿고 있는 듯 했다. 내가 익히 알아왔던 '기술'부터 잘은 모르지만 중요하다고 느끼는 '기획', '마케팅'의 영역까지도 디자인 그 자체, 혹은 디자인에 종속된 개념으로 이해하고 믿고 있다는 인상이 강하게 들었다.
세상이 아무리 b2c 기반의 '서비스' 중심으로 돌아가고 위에서 쓴 대로 "디자인이 중요한 서비스의 기준이 되었다" 해도 '기능'이 뒷받침되지 않거나, 기획(목적)이 불분명한 제품 혹은 서비스는 겉만 번지르 하거나 가볍고 트랜디하다고 하여 사용자의 선택을 못 받을텐데 말이다. 그래서 저자는 무리하게 '개발', '기획'이나 '마케팅'의 영역이라 오랜 기간 합의된 것도 '디자인'이라 주장하는 것일까?
한편으로는 저자가 디자이너 후학들에게 보내는 미래 핵심 디자이너들의 '매니페스토'같은 인상도 받았다. 솔직히 아직까지 나는 '디자인'을 제품(혹은 서비스)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기 보다는 보조 개념(혹은 하위 개념)으로 보았는데, 저자는 나와 같은 올드한 다수의 시각을 거부하는 듯 하다. 오히려 디자이너들이 주도적으로 디자인을 프로젝트의 핵심 개념으로 세우고,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동료 혹은 고객)이 디자인을 다른 역할의 상위 개념으로 바라보기를 원하는 듯 하다. 핵심 목적이 이것(매니페스토)라면 독자가 디자이너 및 디자이너 관계자인 전제 하에 적절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호평 일색이던 추천사 대부분도 현직 디자이너거나 디자이너 출신이어서 그런 것일지도.
저자의 프롤로그를 믿고 더 이상 책을 읽지 말았어야 했나?
저자는 프롤로그 말미에 "'장식적인 의미의 디자인과 크게 관련 없어 보이는' 이 책의 다섯 개 장은 현재 '가장 트렌디한 디자인 사고방식'을 담고 있다."고 했다. 이 책의 목차를 살펴보면 정확히 다섯 개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책의 모든 장을 통털어 전통적인 디자인 혹은 개선된 디자인 개념 혹은 기법이 아니라, 혁신적이고 (한편으로 꽤나 파괴적인) 가장 트렌디한 디자인 '사고방식'을 담았다고 선언한 것이다.
프롤로그의 마지막 문장은 미래에 어떤 경험을 예견하는 것 같아 섬뜩하기까지 하다.
"디자이너가 아니더라도 디자인 사고의 매커니즘을 알아둔다면 여러분이 일하는 모든 영역에서 분명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위와 같은 사고를 하는 디자이너들과의 협업이란... (저자는 5장에서 커뮤니케이션도 디자인의 일환이라 말한다.)
초기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독서에 힘이 빠지지만, 이 또한 좋은 경험(안티패턴)이 아닐까 싶다.
디자인 관련 책이기 때문에 책의 디자인에 관해서도 간단히 언급해 둔다.
1. 책 사이즈는 정당한 것 같다. 너무 크지도 작지도, 너무 두껍지도 얇지도 않은 '국판'에 가까운 판형(140x200). 그런데 굳이 '국판'을 따르지 않고 '국판'에 가깝게 만들었을까? 책을 서가에 꽂을 때 가지런한 편이 좋은데.
2. 책등보다 책배 쪽으로 글을 치우치게 하여 가독성을 키우려 한 점은 (의도가 맞다면 이해되나) 책이 두껍지 않은 관계로 그닥 효과적이진 않은 것 같다.
3. 쪽번호와 각주가 각각 가독성이 떨어지는 크기와 색상인 점은 좀 아쉽다.
"한빛미디어 <나는 리뷰어다> 활동을 위해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