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점
김훈 지음/푸른숲

소설가 김훈이 2005년에 썼던 '개'의 개정판이다.

그가 2005년에 썼던 책을 읽어보지는 않았으나, 그의 이전 필체와 문장을 생각해 보건대 2021년의 '개'는 그가 덧글에서 밝힌 만큼이나 (가파른 비탈을 깎아 야트막한 언덕을 만들었다고 한다.) 부드럽고 따뜻하다.

주인공인 개 '보리'는 수컷 진돗개로 산골 깊은 마을에서 '엄마'의 5형제로 태어나 마을이 수몰되는 통에 정든 고향과 가족, 옛 주인 할머니/할아버지를 떠나 그들의 둘째 아들이 사는 조그만 어촌으로 보내지고, 거기서도 채 3년이 되지 못하고 주인아저씨의 갑작스러운 죽음 (그는 어부였으며, 보름사리에 바다로 나갔다 돌아오지 못했다)과 함께 그들과 헤어짐을 받아들이게 된다.

주인공이 개인 만큼 개의 모양과 습성을 작가의 세밀한 관찰로 표현한 부분이 글 전체에서 묻어 나와 좋았다.
개의 눈으로 본 자연과 사람과 또 세상의 모습은 얼마나 경이롭고 한편으로는 덧없는 것인지.

작가는 아둥바둥 살아가는 사람들 틈에서 사람과의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보리'를 통해 관계의 중요성을, 세상에 대하여 하고 싶은 말을 한다. 나는 그 작품을 읽으며 나만의 해석을 덧붙여가는 재미에 빠진다.

'보리'의 눈을 통해, 작가의 손을 통해 나온 문장 중 내가 인상깊게 읽은 부분을 발췌한다.


p34.
사람들은 대체로 눈치가 모자란다. ...(중략)... 남의 눈치 전혀 보지 않고 남이야 어찌 되건 제멋대로 하는 사람들, 이런 눈치 없고 막가는 사람이 잘난 사람대접을 받고 또 이런 사람들이 소신 있는 사람이라고 칭찬받는 소리를 들으면 개들은 웃는다. ...(중략)... 사람들 험담에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다'라는 말이 바로 이거다.


p75.
나는 새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들은 주인이 없고 고향이 없다. 그것들은 어디론지 가고 또 간다. 그것들은 닥치는 대로 쪼아 먹고 사람과 인연을 맺지 않는다. 그것들은 떼를 지어 하늘을 날아가다가 갑자기 방향을 돌린다.


p85.
똥을 먹는다고 해서 똥개가 아니다. 도둑이 던져주는 고기를 먹는 개가 똥개다.


p112.
낯설다고 해서 짖지는 않는다. ...(중략)... 지나가는 것들이 그저 지나갈 때, 나는 짖지 않는다.


'보리'는 주인과의 두 번째 이별 후 이제는 혼자서 세상을 살아내야 한다. 그래도 그는 좌절하며 주저앉거나 하지 않는다. 주인 가족이 떠나가는 자리를 있는 힘껏 달려 송별하고 다시 자신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윗동네의 '흰순이'도 산아래 동네의 무법자 '악돌이' 도 모두 사라진 후지만, '보리'는 그 동네를 지키며 계속 살아갈 것을, 잘 버텨낼 것을 믿는다. 그에게 또 다른 만남이 있기를 응원한다.

모든 길 위의 '보리'들아. 힘내라!


ps. 1년동안 독서한 내용을 되돌아보니, 전공 기술서, 자기 개발서, 때로 종교서적 정도였다. 12월을 마무리하여 오랜만에 무엇인가 주장하지 않는 그저 (주변을) 돌아볼 뿐인 책을 붙들고 한 순간을 놓치기 싫어 휘릭 읽었다. 20-21년은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르게 흘렀다. 22년에는 가끔씩 쉬어 가며 즐거운 생각과 독서를 이어 가겠다. 안녕히 21, 반갑다 22!

 

#2021년 12월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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