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서해 전쟁'은 20세기 후반부터 현재까지 서해에서 발생한 5가지 사건, 즉


제 1차 연평해전

제 2차 연평해전

대청해전

천안함 폭침

연평도 피격


을 당시 관계자의 증언과 자료를 통해 재구성하여 어떠한 이유로 사건이 일어났으며, 우리의 대처는 어떠했고 어떤 측면에서 문제가 있었는지 낱낱히 밝히는 책이다. 관련자들의 증언을 가감없이 싣고 있기 때문에 당시의 상황을 당사자의 입장에서 깊게 파악할 수 있고, 균형 잡힌 해석과 결언을 통해 이 시대에 필요한 리더십과 시민으로써 갖추어야 할 비판적 정보 해석 자세도 얻을 수 있게 된다.


우선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다음을 눈여겨 볼 만 하다. 

5가지 사건의 공통점은 해군 일선부대와 국방부와 합참을 위시한 지휘부, 청와대와 통일부를 포함하는 정부 사이에 생긴 입장 차로 인해 커뮤니케이션 문제가 발생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즉, 해군 일선부대는 전쟁에 돌입한 군인의 입장에서 작전을 완승으로 이끌고 싶어하고, 청화대는 대북 정책의 흐름을 방해하는 어떠한 소요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입장, 합참 등 지휘부는 일선부대와 청화대 간 의견 차를 조율하지 못하는 가운데, 해군 작전에 걸맞는 적절한 지휘도 못 내리는 갈지자 횡보를 보였다는 것이다.


그 과정 중 일선 부대의 훈련의 결과가 잘 드러난 '제 1차 연평해전'과 제 1차 연평해전의 전승 결과에 취해 안일한 대처를 보이다 큰 피해를 입은 '제 2차 연평해전', 제 2차 연평해전의 복수전 성격인 '대청 해전' 등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대청 해전 이후 북한의 도발 준비를 소홀히 한 결과가 또한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피격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즉, 어떠한 식(우연이든 철저한 도발 준비이든)으로든 전쟁은 시작될 수 있고, 이 때 군과 지휘부와 정치력이 어떠한 식으로 발현되느냐에 따라, 별다른 피해없이 잘 마무리될 수도, 대승으로 갈 수도(후에 보복이 있다고 하더라도) 대패로 갈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불행히도 위 5가지 사건에서는 군사적인 충돌을 피할 수 없었다.


이 사건의 과정 중, 누가 무능하고 누가 잘못 판단한 것인지는 굳이 여기서 얘기하지 않아도 책을 충실히 읽는다면 각자 잘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책을 읽으며 인상에 남았던 구절을 옮겨 본다.


1. '지는 전투는 절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확신이 서지 않을 때 또는 불리할 때 그는 철저히 전투를 회피했다.' (P.30)

; 이순신 장군의 23전 23승을 분석하며, 대의명분이나 이념 또는 적개심이라는 주관적 요소를 전쟁에 절대 개입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


2. 위기 중에 조직들 사이에서는 내부 갈등이 더 커지는데 그 특징은 네 가지다. 첫째, 각 조직은 '우리 조직이 가장 스마트하다'고 생각하며 다른 조직의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둘째, 위기 상황을 '내가 통제해야 한다'고 여기며 자기 조직의 문제해결 방식, 즉 표준행동절차로 다른 조직까지 통제하려는 속성을 보인다. 셋째, 위기 이후에 자기 조직이 차지할 이익을 계산하면 더욱더 명성과 권력에 집착한다. 넷째, 각 조직 간에는 위기 극복의 성패를 떠나 감정적 갈등과 앙금이 점차 깊어진다. (P.114)

; 제 1차 연평해전에서 각 조직의 갈등을 해석하는 내용인데, 존 스타인브루너의 사이버네틱스 모델하에서의 '적당의 논리'라고 한다. 이 내용은 국가 조직 뿐 아니라 우리가 근무하는 회사 등에도 충분히 대입해 볼 만하다.


3. 바깥쪽에 서 있는 펭귄은 무리에서 가장 힘없는 놈들이다. 힘세고 영향력 있는 놈일수록 특권층이 되어 무리의 중앙에 있게 된다. 결국 펭귄 공동체의 안전을 도모하는 원리는 다름아닌 힘없는 구성원들이 무리의 안전을 위해 희생된다는 점이다. (P.221)

; 결국 안이한 작전 행동과 정부의 무대책, 군 지휘부의 무개념 지휘 등으로 희생되는 것은 국민과 일선 장병들 뿐이라는 것을 설명하면서 든 예이다. 매우 적절하고 또 그렇기 때문에 더 가슴이 먹먹해 지는 순간이었다.


4. 서로 자신이 국면을 통제하려고 하면서 타 조직의 전문성은 무시하기 때문이다. 군정과 군령이 혼재된 상태 (P.244)

; 비단 군의 문제뿐 아니라, MGMT와 TECHNIC이 혼재된 우리 조직에도 같은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들었다.


5. 업무를 모르기 때문에 같은 친분이 있는 같은 소속의 군 선배를 찾아가 물어분다. 이렇게 되면 부서 중심으로 업무가 추진되는 게 아니라 또 군별로 사적인 인연에 의해 업무가 추진된다. 10년 후, 20년 후까지 내다보는 장기 전략을 기획하는 전문가들이 거의 전멸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P.254)

; 합참의 인사가 꾸준히 전문성을 키우는 인사가 아니라 인맥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인사이다 보니 업무 추진도 주춤하고 전문성도 결여된다는 얘기. 군의 얘기일 뿐 아니라 다른 조직에도 적용되는 일반론적인 내용이 전개된다.


6. 평소에 하던 대로, 조직의 관성에 따라 움직이는 말단의 조직들에 대해서는 대통령이건 장관이건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P. 283)

사실 조직의 업무 수행은 국가적 의지나 전략과 무관하게 움직인다. 조직은 그런 것과 무관한 자신의 표준행동절차나 일상대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P.284)

; 군 말단의 관성에 따른 안이한 대응이 지휘부나 정치세력의 압력에도 잘 극복되지 않는 이유, 저자는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하지 않고 있지만, 꾸준한 학습과 노력이 필요함은 자명한 일이다.


7. 전장의 소규모 국지전에서는 질 수도 있고 이길 수도 있다. 다만 사후에 필요한 것은 냉정한 분석과 현실성 있는 대책이지 핵심전력을 좁은 섬에 마구 쑤셔 넣는 식의 이상한 대책은 흥분 상태에서 책임 추궁을 두려워한 대통령의 조급증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P.305)

; 이 부분은 분명히 새겨 들어야 한다. 냉정하게 사건을 분석하고 현실성 있게 대책을 내려야 할 지도부가 사람도 살기 좁은 작은 섬에 최신식 무기를 잔뜩 들고 들어가서 나중에는 엄폐할 공간이 없어 해안 도로에 방치하게 만드는 이런 명령은 다시는 내려서도 안 되고 듣고 싶지도 않다.


8. 똑똑한 장군 두 명보다 멍청한 장군 한 명이 지휘하는 것이 낫다. (P.327)

; 나폴레옹의 말이라고 하는데, 우리와 우리의 조직은 어떠한가? 고민해 봐야 한다.


9. 정치권력이 중요한 안보 문제를 다룰 때 보이는 정책결정자의 사고방식 유형을 세 가지로 구분했는데, 그 가운데 '기계적이고 일상적인 사고'는 자신이 주도적으로 현상을 관리하거나 타파하지 않고 참모나 일상적인 조직에 위임해 버리는 사고방식이다. (P.338)

; 김대중 정부의 태도였다고 하는데, 아무런 소신과 신념이 없는 사고방식, 즉 '이도저도 아닌 주관없는 사고'를 했던 이명박 정부의 태도와 그 내용은 다르지만 해악이 되는 건 마찬가지라는 것을 얘기한다.


10. 이제껏 적과 협력하여 평화를 추구한 지도자는 누구나 불행하게 정치를 마감하면서 자신은 희생되었으나 그 대신 전 세계가 전쟁을 초월하여 승리자가 되게 만들었다. 이 점에서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후에도 핍박을 받는 것은 세계 역사에서 그리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다. 그럼에도 스스로의 불이익까지 감수하면서 올곧게 평화를 항해 나아갈 수 있는 지도자가 있다면 그 국민은 승리자가 된다. (P.347)

; 지도자의 희생으로 국민이 승리자가 된다. 모든 리더들이 새겨 들었으면 하는 격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서해전쟁의 숨겨진 내막을 알게 되었기에 더욱 정신을 바짝 차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위에서 발췌한 내용을 보더라도 이 사건의 본질과 핵심은 군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물론 군에서 발생한 사건이기에 아까운 우리의 아들들이 산화되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 재산이 화염에 휩싸이는 최악의 사태를 경험했지만, 이러한 일들이 우리 사회 조직의 곳곳에서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당장 내가 사랑하는 가족, 직장, 학교도 마찬가지로 혼란과 위험에 빠지게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위기 관리의 핵심은 각 조직이 서로 자신의 역할과 능력을 십분 발휘하면서 또한 상대 조직의 역량을 인정해 주고, 조화롭게 사건을 해쳐나가며 또한 과거의 일에서 반성하고 미래에 적용할 만한 귀감을 찾는 것이라는 점을 확실히 알려준다고 생각한다.


이상으로 '서해 전쟁' 서평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이 책은 사건의 내용도 물론이거나와 그 밖에 여러 가지-리더십, 조직문화 등에 대해 생각해 볼 거리를 던져 준 책이었다. 시간이 된다면 저자가 인용한 존 스타인브루너의 '사이버네틱스 모델'에 관련된 자료도 꼭 찾아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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