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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류, 세차게 흐르는 물.
이 물을 의지하여 말도 안되는 싸움을 이겼다.
정유재란, 명량에서 통제공 이순신 장군이 싸운 싸움에 대한 한 줄 평이다.
선조와 조정 아첨꾼의 모략에 통제공이 한양으로 압송되고, 삼도 수군 통제사에 재수된 원균이 칠천량에서 대패한 후, 공은 백의종군하여 흩어져 버린 조선 수군을 추스리고자 애썼다. 이 때, 선조를 위시한 조정은 수군을 파하라 명했다. 어차피 전력도 안되는 십수 척의 배로 일본의 대함대를 어떻게 막느냐면서.
공은 장계에서 유명한 말을 남기셨다.
"아직도 신에게는 12척의 배가 남아 있사옵니다."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서 저런 장계를 올릴 리가 있겠는가?
조선 수군을 버리지 말고, 수군을 폐함으로써 조선의 남해와 서해를 버리지 말고, 그에 속한 백성을 버리지 말기를 바라는 공의 마음이 저 문장에 남아 있는 것 같다. (아무것도 안못 하고 손 놓았던 4.16일의 일과 오버랩이 되기도 한다. ㅠ.ㅠ)
어쨌든, 그런 열악하고 말도 안되는 전력 차를 어떻게 극복해 냈는지 밝히고 묘사하는 작업은 역사학자 뿐 아니라 작가 집단(소설가를 위시해 각본가, 드라마 작가, PD, 영화 감독까지)에게는 무한한 상상력을 제공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사실을 왜곡하면서 까지 극적인 내용을 전달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상황 자체가 이미 극단의 상황을 마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서두에 꺼낸 이유는 이 책(현재는 절판 되고 중고 서적으로도 구하기 어려운)이 명량 대첩(넓게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 관한 객관적이고 사료에 근거한 묘사와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고, 더 근본적으로는 현재 천만 관객이 훌쩍 넘은 영화 "명량"의 내용이 사실을 너무 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지난 2000년 초 KBS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이 방영되면서 이슈가 되었던 이순신 자살설, 이순신 반란 모의설, 원균 용장론 등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발굴된 소설로, 지난 글
에서 원작인 김탁환의 "불멸"을 이야기할 때 언급한 적이 있다.
작가는 김경진, 안병도 씨로써 밀리터리 소설계에서 내로라하는 인기 작가들이다. 데프콘 등 현대 전투를 소재로 글을 쓰다가 명량 대첩을 소재로 "격류"를 썼는데, 공에게 불필요한 의문을 남발하는 "불멸"의 내용에 발끈하여 정유재란 전체를 소재로 한(심지어 시작은 칠천량의 대패) "임진왜란" 시리즈를 내기도 하였다.
밀리터리 소설을 전문으로 쓰는 작가이기 때문에 책에는 전쟁에 대한 묘사가 매우 잘 기술되어 있고, 영화 "명량"에서 보였던 억지스런 설정과 장면도 배제되어 있는 등 실제 명량 대첩이 어떠했을지 상상하는데 영화보다 큰 도움이 된다.
특히, 영화에서 보였던 좌선의 백병전(실제로는 안위의 배가 백병전을 한 것으로 추정)이나 전체 함대의 충파(당시 표현은 당파이며, 판옥선이 당파를 위해서는 근접전의 조총 및 화살 공격에 대한 대비가 필요함) 공격 등은 소설로 보면 더 잘 이해되고 영화의 무리한 설정이 잘 드러난다.
물론 소설에서도 "발포 돌격선"이라는 명칭의 "거북선"이 등장하는 등 사료에 없는 내용도 등장하지만, 그 경우 영화와는 달리 추정의 근거 등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설득력이 있는 편이다. 이 부분은 영화와 달리 책은 지면의 양에 구애 받지 않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특별히 안병도 작가가 담당한 일본측 전투 장면 묘사는 이전에 국내 작가들이 한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것으로 왜란의 주범인 일본이 단순히 괴수이거나 전쟁광이라는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 그 당시 전국 시대를 살아가던 일본인에 대한 고찰과 당시 전투 방식, 무기 등에 대한 고찰도 되어 있는 등 양 측의 시각을 동시에 읽을 수 있게 한다.
여하튼 술술 읽히는 게 킬링 타임용으로든 영화의 감동을 책으로 한번 더 되살리는 용도로든 사료에 충실하게 묘사한 전투를 상상해 보는 용도로든 "격류" 소설은 독자들을 매우 만족시키는 소설이다.
특히 영화 "명량"에 감동 받았다면 이 책도 필히 읽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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