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하다는 착각 - 8점
마이클 샌델 지음, 함규진 옮김/와이즈베리

능력주의의 허구, 그러나 해법은...

 

마이클 샌델이 '정의란 무엇인가'로 한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지 10년. 이번에는 '공정'이란 주제로 불편한 현대 사회를 진단한다.

 

'공정'

 

사전적 정의로는 '공평하고 정의롭다'

단, 역사에서 '공정'의 기준은 저마다 달랐는데, 그 기준에 따라 사용되는 단어의 실제 의미가 달라진다.

 

미국과 한국을 비롯하여 현대 사회는 '공정'을 '개인의 눙력과 노력에 따른 결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소위 '능력주의'가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샌델 교수는 이 '농력주의'가 과연 공정의 기준이 될 만큼 공평하고 정의로운가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즉, 개인이 가진 능력과 이를 뒷받침하는 노력이 온전히 개인의 것인가 하는 점이다.

우리가 이미 주지하고 있듯 개인의 능력은 이미 개인의 범위를 넘어서 부모(심지어 조부모까지도)의 조력과 자신이 속한 집단(특히 학벌)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에서 개개인의 노력은 그 효과가 서로 다를 수 밖에 없다.

이렇게 기준이 다르면 결과가 공정하다고 할 수 있을까?

 

또한, '능력주의'의 결과로 사회구성원간 양극화가 커지지만 이를 '사회시스템의 문제'가 아닌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는 것도 큰 폐혜라 주장한다. 즉, '능력주의'의 결과인 불평등, 차별, 격차를 '승자의 권리(전리품)'이자 패자의 당연한 결과로 여기고 자포자기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시스템 하에서는 엘리트에 대한 숭배가 생겨날 수도, 자신보다 못 하다고 여기는 계층(예컨테 저학력자, 저소득자, 이민자, 소수자 등)에 대한 경멸, 무시 등으로 발전할 위험성이 존재한다.

또는, 자신들이 속한 계급에 대한 포퓰리즘적 '배반투표'로 발현되기도 한다. 미국이나 영국의 정치적 결과 (트럼프의 당선 및 브렉시트)가 그 예이며, 한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은 트럼프의 재선 실패와 그 이후 민주당의 정책 변화를 통해 '능력주의'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지만 (그닥 성공적인 것 같지는 않고) 한국의 경우는 능력주의가 여전히 맹위를 떨치며,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결국 종단이 어디인지 확인한 후에야 반등이 가능할 듯 하여 심히 걱정스럽다.

 

저자는 사회활동가 혹은 정치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능력주의의 만연)를 개선할 화두를 던지는 것도 매우 도전적이며 비현실적이다. '제비뽑기'라니. 우리 나라에서는 특히 더 설득력이 떨어지는 방법이다. 우리는 '능력주의'의 근간이라고 하는 '학력주의'보다 훨씬 더 강력한 '학벌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이므로.

 

# 2022년 7월 서평

강자 동일시 - 8점
강수돌 지음/사무사책방

강수돌 교수의 '강자 동일시'

우리 사회의 불공정한 공정 현상을 누구보다 잘 분석하고 함께 행복한 세상을 위한 대안을 제시한다.
책의 주요 의제와 저자의 주장은 큰 글씨로 책의 군데군데에 드러난다.


다음은 그중 저자가 주제인 '강자동일시' 와 현시국의 화두인 '공정'에 관해 논한 부분이다.


<강자동일시> p.152 ~ 153

우리에게는 자신은 승자가 아니면서도 꼭 승자 편에 서서 마치 승자가 된 것처럼 행동하고, 또 반드시 승자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태도는 성공에 대한 집착과 함께 '강자 동일시'로 발전합니다.
약자가 노력 끝에 승자 집단에 들기만 하면 보상이나 받으려는 듯 '악랄한 강자'가 되어 이제는 반대로 약자를 아주 무시하고 억압합니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부자 숭배 심리나 권력자 숭배 심리가 강한 것도 이 '강자 동일시' 심리에서 나온 겁니다.
이 '강자 동일시' 안에는 개인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이 모두 들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강자를 숭배하고 복종하며 추구하는 심리가 있고, 시회적으로는 체제 경쟁에서 승리한 것처럼 보이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당연시하며 자본주의가 영원할 거라고 믿는 심리가 있지요.
잘 들여다보면 모든 '강자 동일시'의 밑바탕엔 두려움(fear)이 있어요. 죽음의 두려움, 배제의 두려움, 탈락의 두려움 등이죠. 왜 그럴까요? 삶에서 맞닥뜨린 온갖 종류의 거대 폭력 때문이죠.
예를 들어, 6.25 한국전쟁, 제주 4.3, 광주 5.18 만주화운동, IMF 외환위기, 세월호 참사 같은 한 개인을 넘어선 역사와 사회체제의 구조적 폭력들이지요. 개인으로서는 도움지 감당할 수 없는 폭력이죠.
그런 폭력의 경험과 그로 인한 마음의 상처는 트라우마로 고정됩니다. 이 트라우마가 고정되면 언제 어디선지 꼭꼭 숨어 있다 갑자기 나를 덮쳐 내 삶을 파괴하고야 말 '두려움의 괴물'이 늘 우리를 괴롭힙니다.
죽음, 탈락, 배제, 루저 등에 대한 공포, 이걸 회피하려는 실리적 전략이 '강자 동일시'로 나타나는 것이죠.
1등 강자를 따르면, 1등 강자가 되면, 그 역사의 폭력을 피해 살아남을 수 있거든요. 아니 있을 것 같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늘 '1등 강박증'인 '강자 동일시'에 빠져 살게 됩니다.


<공정> p.200

'정의도 그렇습니다. 경쟁 자체가 문제인데, 마치 '공정 경쟁'이 정의인 것처럼 여기게 되는 거죠. 예를 들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바꿔준다는 데 대해서 졍규직이 반대합니다.
"정규직이 되기 위해서 내가 얼마나 어려운 시험을 치르고 들어왔는데, 너희들은 공짜로 정규직이 되려고 해! 양심도 없어!" 이런 식이죠. 물론 그들의 심정은 이해가 갑니다만, 그것은 정의가 아닙니다.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로 근로 형태를 나눈 것 자체를 문제 삼지 않는 '공정'은 '공정'이 아닙니다. 그때 '공정'은 '불공정을 인정하는 공정'일 뿐이지요. 말하자면 '가짜 공정'입니다.
'비례성의 원리', 노력한 만큼 받는다는 것은 언뜻 정의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이미 유리한 위치를 점유한 사람들의 입장만을 존중하는 '공정'일 뿐입니다.
그것은 '공정'이 아니라 자본의 논리에서 나온 교활한 성과주의입니다.


저자는 이러한 강자동일시, 이를 강화하는 돈중독, 일중독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사람이 서로 연대하며 중독에서부터 깨어나길 권한다.
무엇보다 대안을 제시하고 논의의 시작으로 제안하는 부분은 대안 없는 비판을 일삼으며 언론의 관심과 개인 영달을 꾀하는 소위 진보인사들의 책보다 백배 더 유익하다.


개인적으로는 피케티나 센델과 견줄만한 책으로 보이며, 일독을 권한다.

# 참고로, 책을 읽으면서 단락 구분이 안 되어 어디서 끊어 읽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저자의 스타일이 원래 그런가 싶지만, 계속 읽다 보면 실제 음성 지원이 되는 듯 하여 술술 읽혀졌다.

# 2021년 6월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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