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 - 8점
김훈 지음/문학동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글로, 존경하는 위인의 삶에 가장 중요한 순간을 읽는 감동이란.

 

얼마전에 안중근 의사의 재판정 기록을 읽으며, 그의 사상과 굳은 의지에 존경하는 마음이 더욱 깊어졌는데, 좋아하는 작가의 글로 다시 그의 생의 마지막을 보게 되니 감동이 더했다.

작가는 젊은 시절부터 안중근의 일생을 글로 쓰는 것이 큰 목표였다고 하는데, 70세가 훌쩍 넘어 그의 발자취를 결국 글로 따르는 것을 보자니 작가의 노고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 진다.

 

작가는 안중근과 이토가 각각 하얼빈으로 가는 여정을 대비시키며 젊은 안중근의 고뇌와 노쇄한 이토의 처세를 대비시키기도 하고, 안중근의 내면에서 부딪치는 젊은 사상가/활동가의 의지와 종교에 귀의한 종교인으로써 가지는 신앙심 사이의 갈등도 상상으로 채워 넣는다. 이러한 작가 특유의 상상력을 일부는 매우 싫어하기도 일부는 매우 추종하기도 하나, 역사가 그로 인해 변질되거나 하지는 않으므로 나는 그의 글이 꽤 좋다.

 

두고두고 다시 읽을 책.

 

# 2022년 9월 서평

안중근 재판정 참관기 - 8점
김흥식 엮음/서해문집

얼마전 3/26일은 안중근 의사의 기일이었다. 2/14일 형을 언도받고 한달 열흘 남짓새 형장에서 30대의 짧은 삶을 마감하셨다. '단지'와 이토 히로부미의 '저격'으로 저명한 민족의 대표 독립 운동가이지만, 그가 어떤 재판을 받아 '사형' 언도를 받았는지, 그가 부당히 복역했던 '뤼순'은 어디였는지 어렴풋하게만 알고 있다가, 재판정 기록을 쉽고 현실감 있게 설명한 책을 발견하여 읽게 되었다.

책이 산정한 적정 독자층이 중고생인 것을 알았지만, 어쩌랴? 역사에 (특히 일제 강점기 근대사) 있어서는 내가 딱 그 수준인 것을. 

 

재판 기록을 읽으며, '일제'에 의해 빼앗긴 대부분의 권리, 그 중에서도 내 나라의 법에 따라 재판을 받을 권리가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닫는다. (물론 법이 만인에게 공정하다는 믿음 위에서. 요즘 이 믿음이 많이 무너지고 있지만)

 

안 의사의 국선 변호인은 일본인이었다. (조선인 변호사는 일본법의 규제에 따라 변론을 맡을 수 없었다.) 그들이 내세웠던 안 의사에 대한 변론은 (그들이 안 의사에 대해 어떤 감정이었는지와는 별개로) 그의 '식민지 국민' 지위에 근거한 면책 조항이나 그의 '법 무지'를 이유로 하는 감형을 주장하는데 그쳤다. 그에 반해 안 의사는 최종 변론에서 자신의 '동양평화론'에 기반한 의거 동기와 '전쟁 포로' 의 지위를 주장하였지만 재판정에 의해 배척당했다.

약 일주일간의 짧고 얕은 6번 심리와 그 끝에 '사형' 언도라는 큰 결정을 뒤로 안 의사는 '뤼순' 감옥에 수감되어 자신의 신변을 정리하기 위한 책 집필에 들어가는데, 책의 완성을 위한 형 집행 연기 마저 거절 당하는 사실에는 허탈하기 까지 했다.

 

더불어 안 의사와 그의 의거에 대해 참 무지했구나 생각되었다.

그와 더불어 거사를 준비한 동지가 3명 더 있다는 것과 그들의 이름이 각각 우덕순, 조도선, 유동하였다는 것과 이토가 만약 '하얼빈' 역이 아닌 '채가구' 역에서 내렸다면 내가 기억했을 첫 번째 이름은 '우덕순'이 될 수도 있었다는 것이 참 죄송하다. 나와 우리는 네 분 모두를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살면서 참 많은 것을 잊는다. 망각은 삶을 적당히 부드럽게 너무 모나지 않게 살게 해 주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중요한 것들도 많이 잊는다. 최근에 와서 그런 생각이 더 커졌다. 단 10년 전, 5년 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잊고 산다. 잊지 않기 위해 기록을 남기고 읽어야 한다. 아픈 기억일수록 더 그래야 한다.


이토 히로부미 안중근을 쏘다
국내도서>소설
저자 : 김성민
출판 : IWELL(아이웰) 2009.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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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안중근 장군 하얼빈 대첩 거사 100주기를 기념하여 출판된 책으로 사실 거사 100주기는 작년의 일이고 이 책 역시 작년에 출간된 책이지만, 올해 순국 100주기를 기념하여 방송사들이 안중근 장군과 그의 주변을 다룬 프로그램을 여럿 내놓으면서, 그 중 "TV 책을 말하다" 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대체의 내용도 그 때 알게 되었고 말이다.
 
처음에는 이 책의 의도를 잘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순국 100주기 기념의 일환으로 내 놓은 책으로 보기에는 쓰여진 내용이 너무도 처참했기 때문이다. "호부견자"로 비웃음을 샀으며 아버지의 업적을 깡그리 무너뜨리는 역할을 자임해 마지 않았던 안중근 장군의 둘째 아들, 안준생의 이야기가 이 책의 주된 내용이다. 그래서 처음 이 책의 내용을 들었을 때는 저자의 숨은 의도를 찾아보려고도 했었다.

그런데 이 책을 다 읽고 나선 안준생의 심정이 이해되는 측면도 있었다. 그의 아버지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과 결국 아버지를 배신하는 행위로 이어지고 만 원인은, 자신이 처한 참혹한 현실이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타인(아버지라 할지라도)의 결정에 의한 것이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일제의 간악한 속셈(과 거부하기 힘든 생존에 대한 협박)에 굴복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것이 마치 사막의 모래지옥에서 살아나오기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을 것이라는 점에서는 안준생의 결정에 침을 밷을 수 없다고도 생각된다.
이런 식으로 당시의 굴욕(메이지 유신과 조선 식민지화의 일등 공신-이토-을 잃은 점)을 해소하려 했던 일제의 간악함에 치가 떨릴 뿐...

또한, 아버지의 결정으로 인해 아들이 피해를 볼 수 없는 것이 이해되는 것과 동등하게 이 이유때문에 장군의 거사가 폄하될 하등의 이유도 없다는 것 역시 깨닫게 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안중근 장군의 새로운 면모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던 것 같다. 그의 동북아 미래에 관한 스케일, 역사관, 경제관 등을 책을 통해 일부 알 수 있었고, 기존에 가졌던 생각들, 예를 들면,

1. 안중근 '장군'이라는 호칭에 대한 거부감 - 의사라 불리는 것이 더 거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2. 최근 빈번한 중동지역 테러와 무의식중 동일시 했던 생각 - 똑같이 제 나라를 위한 것 아니냐,

등에 대한 명징하고도 수긍할 수 밖에 없었던 반론을 잘 정리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얼마전 TV에서는 항일 아나키스트 이회영의 삶을 조명한 '자유인 이회영'이란 제목의 다큐 드라마를 방영했다. 거기서도 느낀 것이지만, 당시의 조선/대한 제국 국민들, 우리의 선배, 선열들의 역사 인식, 경제관, 미래관은 현재의 우리를 초월하였던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선열들의 앞선 생각, 행동하는 양심, 피와 눈물 덕에 우리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더욱 정신 차리고 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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