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봉준 재판정 참관기 - 8점
김흥식 엮음/서해문집

지난 번 읽은 [안중근 재판정 참관기]에 깨닳은 바가 있어 해당 도서의 다른 시리즈를 찾아 읽기 시작했다.

2편으로 나온 책이 [전봉준 재판정 참관기] 이다.

 

전봉준.

 

녹두장군, 동학운동, 그리고 어렴풋이 우금치 전투와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TV드라마..

'전봉준' 이름 석자에 기억나는 것이 기껏 이 정도였다. 우리 역사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생각에 책을 제대로 읽어보자고 생각했다.

 

이 책은 지난 [안중근 재판정 참관기]와 비슷하게 전봉준이 잡혀 관군(과 일본군)에 의해 서울로 압송된 후 이루어진 재판을 기록한 문서를 토대로 하고 있다.

사실 재판이랄 것 없이 고문을 동반한 심문 과정에 대한 기록-공초-에 의한 것이다. 

특이하게도 이 심문에는 조선의 관리와 일본의 영사가 함께 참여하고 있는데, 2차 봉기의 주된 이유가 외세를 물리치자는 것이었고 일본군의 신식 군대와 전투를 벌인 것도 한 이유인 듯 하다.

 

전봉준은 전라도 고부에서 최초로 일어난 농민봉기 후 스스로 해산하였다가, 농민봉기를 수습하러 온 '안핵사'의 과도한 진압에 대항하여 1차 동학농민운동을 주도한다.

이를 진압하고자 청나라의 힘을 빌리려 한 무능한 정부의 실책 덕에 일제 역시 조선 땅을 침범하자 외세의 침략을 더 걱정한 전봉준은 정부와 타협하고 한 차례 물러났다. 

그 후 일제가 경복궁을 침탈하고 청일전쟁을 벌여 승리를 거두자 이에 대항하여 일어난 2차 동학농민운동도 주도하였으며 이 책임을 모두 물어 결국 사형당하게 된다. 

그와 함께 동학운동을 이끌었던 김개남, 손화중, 최경선도 함께 처형당하였다.

그 중 김개남은 관군에 잡히자 마자 처형 당해 변변한 기록도 없다고 하니 안타깝기 이를 데가 없었다.

(다만, 구전으로 내려오는 지역의 이야기가 토지에서 각색되어 나온다고 하니 흥미롭다.)

 

자신의 백성을 없수이 대하는 탐관오리들을 응징하기 위해 일어났다가, 외세의 압박을 물리치기 위해 정부와 화해를 하기도 하는 등 전봉준과 동학농민운동은 나라와 백성을 위하는 애국애민의 정신의 모범이라 할 만 하다. 이 운동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지만 나중에 독립운동의 단초가 되기도 하는 등 우리 나라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우리가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같은 실수와 고통을 당하지 않는다. 공부하고 볼 일이다.

 

# 2022년 8월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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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재판정 참관기 - 8점
김흥식 엮음/서해문집

얼마전 3/26일은 안중근 의사의 기일이었다. 2/14일 형을 언도받고 한달 열흘 남짓새 형장에서 30대의 짧은 삶을 마감하셨다. '단지'와 이토 히로부미의 '저격'으로 저명한 민족의 대표 독립 운동가이지만, 그가 어떤 재판을 받아 '사형' 언도를 받았는지, 그가 부당히 복역했던 '뤼순'은 어디였는지 어렴풋하게만 알고 있다가, 재판정 기록을 쉽고 현실감 있게 설명한 책을 발견하여 읽게 되었다.

책이 산정한 적정 독자층이 중고생인 것을 알았지만, 어쩌랴? 역사에 (특히 일제 강점기 근대사) 있어서는 내가 딱 그 수준인 것을. 

 

재판 기록을 읽으며, '일제'에 의해 빼앗긴 대부분의 권리, 그 중에서도 내 나라의 법에 따라 재판을 받을 권리가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닫는다. (물론 법이 만인에게 공정하다는 믿음 위에서. 요즘 이 믿음이 많이 무너지고 있지만)

 

안 의사의 국선 변호인은 일본인이었다. (조선인 변호사는 일본법의 규제에 따라 변론을 맡을 수 없었다.) 그들이 내세웠던 안 의사에 대한 변론은 (그들이 안 의사에 대해 어떤 감정이었는지와는 별개로) 그의 '식민지 국민' 지위에 근거한 면책 조항이나 그의 '법 무지'를 이유로 하는 감형을 주장하는데 그쳤다. 그에 반해 안 의사는 최종 변론에서 자신의 '동양평화론'에 기반한 의거 동기와 '전쟁 포로' 의 지위를 주장하였지만 재판정에 의해 배척당했다.

약 일주일간의 짧고 얕은 6번 심리와 그 끝에 '사형' 언도라는 큰 결정을 뒤로 안 의사는 '뤼순' 감옥에 수감되어 자신의 신변을 정리하기 위한 책 집필에 들어가는데, 책의 완성을 위한 형 집행 연기 마저 거절 당하는 사실에는 허탈하기 까지 했다.

 

더불어 안 의사와 그의 의거에 대해 참 무지했구나 생각되었다.

그와 더불어 거사를 준비한 동지가 3명 더 있다는 것과 그들의 이름이 각각 우덕순, 조도선, 유동하였다는 것과 이토가 만약 '하얼빈' 역이 아닌 '채가구' 역에서 내렸다면 내가 기억했을 첫 번째 이름은 '우덕순'이 될 수도 있었다는 것이 참 죄송하다. 나와 우리는 네 분 모두를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살면서 참 많은 것을 잊는다. 망각은 삶을 적당히 부드럽게 너무 모나지 않게 살게 해 주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중요한 것들도 많이 잊는다. 최근에 와서 그런 생각이 더 커졌다. 단 10년 전, 5년 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잊고 산다. 잊지 않기 위해 기록을 남기고 읽어야 한다. 아픈 기억일수록 더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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