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덟 살 이덕무 - 8점
이덕무 지음, 정민 옮김/민음사

조선 정조 시절 실학 (또는 북학)의 대표격인 인물을 뽑으라면 박지원, 박제가, 홍대용과 더불어 형암 이덕무를 뽑는다.

다른 3인에 비해 이름이 덜 알려져 있긴 하지만, 별명이 '간서치'라 할 만큼 책읽기를 좋아하고, 사가시인의 한 사람으로 청나라에도 이름을 알린 '시대의 석학'쯤 되는 사람이다.

불혹에 가까워서는 정조의 눈에 들어 규장각 검서관에 발탁되어 15년간 벼슬길에 올랐고, 정조가 하사품을 500여 회 넘게 내릴 만큼 신임을 받은 인물이다.

 

이 책은 그가 18세부터 23세까지 쓰고 모은 글들을 엮은 책이다. 18세에 쓴 '무인편' 부터 '세정석담', '적언찬', '매훈' 등 자기 수양부터 친구와의 석정, 동생에 대한 애감 등을 담은 4종 100여편의 짧은 글은 역자에 의해 한글로 풀이하고 재해석되어 현 시대의 평범한 독자에게도 쉽게 읽힌다.

불후한 가정 환경과 서얼인 신분 탓에 소년 시절 변변한 스승을 두지 못 했지만, 오히려 스스로 경서를 쓰고 외우며 바른 가짐을 하려 애쓴 흔적이 이 책에 남아 있다.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고 행동을 곧게 하기 위해 그가 쓰고 붙여 늘 간직했던 글귀는 그의 당시보다 2배나 더 나이든 내가 보아도 부끄럽고 새길 만 하다.

 

세 밑을 지나는 이 때에 코로나 19로 온 세상이 멈취선 듯, 하지만 사회 내부는 부글부글 긇어오르는 지금. 마음과 행동을 올바르고 곧게 세우며 잠잠히 새기기 좋다.

본격 한중일 세계사 8 - 8점
굽시니스트 지음/위즈덤하우스

조선이 한창 쇄국과 개항 사이에 놓여 있을 즈음, 바다 건너 섬나라에서는 에도 막부가 260 여년 간의 통치를 끝내고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현 정권인 막부는 '개항'을 주장했고, 토막파(막부를 토벌하고 새 정부를 주장)는 '존왕양이', 즉 '쇄국'을 주장했는데 특이하게도 막부든 토막파든 신식문물은 문물대로 받아들여 신식 군대와 산업을 발달시켜 나가고 있었다고 한다.

 

막부의 말기를 바라보는 주변국민 입장에서는 그닥 큰 감흥이 있지는 않으나, 막부의 반대편 일명 '유신지사'라고 일컫는 인물들 중에 조선에 큰 영향(그것도 악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이 나오니 오히려 막부를 응원하게 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이토 히로부미라던가..

 

몇 할의 준비와 몇 할의 운이 따라 막부와 유신정부의 마지막 전쟁인 '무진전쟁'은 유신정부의 승리로 정권 교체가 일어나고, 이제 곧 일본이 근대화를 이룬 후 우리 땅을 침략하는 단계에 이르는데, 그 지점에서 책이 끝나니 이게 불행 중 다행인지, 불행 중 불행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해당 시리즈 중 일본편이 너무 많고 길었음을 책 보는 내내 지적하며 또 다음 권을 기다린다.

본격 한중일 세계사 7 - 8점
굽시니스트 지음/위즈덤하우스

 

이제 한중일 근대사 후반 단계로 넘어가는 7권은 '흥선대원군과 병인양요'를 중심사건으로 19세기 후반부를 다뤘다.

중국과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외세의 영향이 적었던 조선은 19세기 후반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외세에 문물과 개항을 요구 당한다.

제너럴 셔먼호(미국)와 병인양요(프랑스)를 통해 외세에 문을 닫는 '쇄국' 정책이 더욱 강화되는 조선의 운명을 미리 알고 있는 '나'는 마음이 매우 불편하다.

 

한편, 우리보다 먼저 외세에 시달렸던 '청'은 '태평천국의 난'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외세를 배우고 이용하자는 '양무운동'이 발생하지만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지는 못 한다.

 

막간에 베트남의 (프랑스에 의한) 식민 역사에 대한 간략한 에피소드도 눈에 띈다. 학창 시절에 외웠음직한 '코친차이나'도 새록새록 기억나니 교양이 듬뿍 쌓이는 기분(만).

 

이 책은 만화이며, 역사서(그 중에서도 역사 비평)다. 시사만화가인 작가(굽시니스트)가 19-20세기 초반의 동아시아(한국, 중국, 일본) 역사를 이해하기 쉽게 쓴 교양서적이다. 만화 형식이지만 시사만화를 오래 그린 작가답게 단순한 재미에 그치지 않고 당시 사건의 비평을 실날하게 가하는 점이 이 책(시리즈)의 매력이다. 물론 만화라서 담지 못 하는 세세한 연역이나 사건의 묘사, 인물 등이 있을 수 있는데, 아래 책과 함께 읽으면 상호 보완된다.

 

[세트] 대화로 풀고 세기로 엮은 대세 세계사 1~2 세트 - 전2권 - 6점
김용남 지음, 최준석 그림/로고폴리스

2020년 7월 말, 제 8권(아마도 일본을 주로 다둘 듯)이 나왔다.

완간이 언제 될지 불안에 떨며 구매.

맞다. 월요일 화요일 JTBC에서 하던 그 드라마. 2월부터 4월까지 월화 거실 TV앞을 붙들어 놓았던 드라마의 원작이다.

이도우 작가는 전작 "사서함 110호 우편물"로 원래부터 이 분야에서 유명한 작가였다고 한다. 감성, 추억 등에 소질이 있는 작가의 글은 언제 읽어도 감성 충만해 지고, 추억에 잠기게 만든다.

남여 주인공인 '은섭'과 '해원'은 고등학교 동창이지만, 학창 시절에는 서로 잘 모르는 관계다. 서울로 유학갔던 해원이 어느 날 고향인 북현리로 오게 되고, 동네 유지인 노부부가 살던 기왓집을 고쳐 '굿나잇 책방'을 운영하던 은섭과 만나면서 지난 추억과 새로운 사랑을 이루어간다는 어떻게 보면 뻔하고 어떻게 보면 빙그레 미소짓게 만드는 스토리. 그 주변에서 그들과 연관되어 또는 무관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웃고 울게 되는 스토리.

특히, 은섭이 운영하는 '굿나잇 책방'과 책방에서 모이는 독서클럽은 언젠가 나도 한 번 '다녀오고 싶다'는 부러움을 느낄만큼 친근하고 익숙한 느낌을 준다.

드라마나 영화로 시작하여 책을 읽게 되는 경우가 많지 않은데, (드라마는 영상물이기 때문에 출판물이 결핍된-그래서 더 자극이 되는-상상력을 이미 채워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 드라마 중반에 가서야 책을 구매했음에도 책도 잘 읽히는 것을 보니 작가의 필력이 새삼 느껴진다. 책을 보니 1판 22쇄! 역시, 책만 가지고는 달성할 수 없는 인기를 실감하면서.

원작도 재미있고 드라마도 재미있는 책.

언제나, 노회찬 어록 - 8점
강상구 지음/루아크

지난 해 여름, 노회찬 의원이 영면하시고 벌써 1년하고도 두 번의 계절이 바뀌었다.

그 사이에 뜨거웠던 여름과 차디찬 겨울을 지나 다시 여름을 나고 겨울이 왔다.

 

그가 추구했던 세상이 조금 더 가까이 왔는지 되돌아 본다. 지난 여름 그가 허망하게 가고, 금년에는 또 다른 종류의 린치를 보면서 아직도 그가 바라는 세상, 우리가 원하던 세상은 요원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 그의 지근에서 그를 지켜보던 친구이자 동지 '강상구' 씨가 그의 어록들을 모아 만든 책, "언제나, 노회찬 어록"을 읽으며 그를 그리워 하고 그의 삶을 짧게나마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내 기억에 노회찬이 세상에 등장한 첫 장면은, 어느 토론에서 소위 "불판 갈이"로 시청자들을 흔들더니 급기야 김종필 자민련 총재를 재치고, 마지막 순번의 비례대표를 차지하면서 였다. 그 때 방송에서 넙대대한 얼굴에 안경 너머 안광을 밝히며, 호통 하던 모습이 뇌리에 박혀 10년 이상 그를 눈여겨 보고 지지했었는지도 모른다.

 

50년 동안 썩은 판을 이제 갈아야 합니다.

50년 동안 똑같은 판에다 삼겹살 구워 먹으면 고기가 시커메집니다. 

판을 갈 때가 이제 왔습니다.

그 이후로 국회의원으로써 그의 활약상, 시민과 특히 사회 약자들을 바라보던 그의 따뜻한 배려, 여성을 존중하는 마음, 불의에 맞서 자신의 지위(국회의원)까지도 거는 담대함 등을 보면서 더 매료되었던 것 같다.

 

특히 그의 당대표 수락 연설 "6411번 버스 투명인간"은 그의 사후 전국적으로 회자되면서 더욱 그를 그리워하도록 만든다.

 

6411번 버스라고 있습니다. (중략) 이분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름이 있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그냥 아주머니 입니다. 그냥 청소하는 미화원일 뿐입니다. 한 달에 85만 원 받는 이분들이야말로 투명인간입니다. 존재하되 그 존재를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는 분들입니다.

 

그들을 위해 사는 것이 공인인 국회의원으로써 본인의 의무이자 사명이라고 생각했던 그를 기억한다.

 

지난 여름 두 가지 사건이 깊이 뇌리에 박혀 있다.

 

하나는 누구나 알고 있는 '조국' 이슈다. 이 사태에 대해 노회찬 의원이 검찰과 기자, 보수 정당을 위시한 기득권 세력에게 어떤 말을 했을까 상상해 보곤 한다. 아마도 그가 날리는 촌철살인은 막혔던 우리네 가슴을 짧게나마 시원하게 뚫어줬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아는 사람만 관심이 있을 '톨게이트 노동자' 이슈다. 그가 지키고자 하는 '투명인간'들을 위해 그가 싸웠을 것을 생각하니 그가 너무 일찍 우리와 세상을 달리 했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먹먹해 진다.

 

"사람을 믿고 사람에 의지하면, 반드시 실망하게 된다" 고 하는데, 그가 없어 그를 의지하지 못 해 아쉬운 시절이다.

 

# 19년 11월 서평

 

# 그리고, 그가 추구해 마지 않았던. 6411번 투명인간들을 대변하기 위한 법(연동형 비례대표제) 과 특권에 의한 반칙을 막는 법 (공수처법) 이 통과되었다. (19.12)

 

헤아려 본 슬픔 - 8점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강유나 옮김/홍성사

큰 슬픔을 당한 친척이 있는데, 어떻게 위로해 드릴까 고민하다 예전에 개인적으로는 많은 도움을 받았던, C.S. 루이스의 책 "헤아려 본 슬픔"을 선물하려고 마음먹고 내용을 복기하려고 한 번 더 읽어 보았다.

이전에 내가 겪은 것과 다른 종류의 큰 슬픔을 겪고 계실 분께 선물하기 적절할지 고민도 되고, 책 내용이나 표현이 적절한지 기억이 가물가물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다시 읽은 "헤어려 본 슬픔"은 이전에 읽었던 느낌과 사뭇 다른 경험을 주었다.

당시에는 내 경험에 비춰 "슬픔" 자체에만 집중해서 공감하며 책을 읽은 기억이 나는데, 지금 다시 읽으면서 "객관화, 타자화" 해 보니, "슬픔"에 관해 저자의 경험에 기반한 참 자세하고 세밀한 묘사가 보인다는 점이 그 첫 번째였다. 그러고 보니 책 제목이 '헤아려 본 슬픔'인 것도 의미심장하다. 보통 '가눌 수 없는', '헤아릴 수 없는' 등, '슬픔'은 표현하기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인데, '헤아려 본' 표현이 적절하게도 이책은 저자 자신의 슬픈 감정을 글로 매우 잘 표현했다. 과연 이 시대의 사상가, 문학가라 불리는 이유다.

루이스의 경험(아내와 사별)이 내 경험이나 친척분의 경험과는 다른 종류의 슬픔임 - 모든 슬픔이 그러하겠지만 - 에도 "슬픔"이라는 감점은 유사하다는 것도 새삼 느낀 점이었다.

 

다만, 이 책을 다시 읽은 후에 책을 선물하지는 않기로 하였는데, 슬픔의 종류가 다른 때문에 괜히 주제 넘게 느껴질 수도 있고, 끝까지 읽지 않으면 오해하기 쉬운 내용이 일부 섞여 있기도 해서이다.

 

# 19년 9월 서평

본격 한중일 세계사 5 - 6점
굽시니스트 지음/위즈덤하우스

이 책 시리즈의 서평을 처음 쓰기 시작한 지 벌써 1년이 넘어간다.

1편이 나올 때만 해도 '이 정도 동아시아 세계사를 건드릴 만한 책은 앞으로 없을 것이다' 생각했었는데, 그 일이 사실이 되었다. ㅠㅠ

 

앞서 중국의 '태평천국의 난'과 '아편전쟁'에 이어 5-6권에서는 일본의 개항과 에도 막부 말기부터 메이지 유신 이전의 19세기 후반 일본을 다룬다.

한참 일본과의 역사/경제 분쟁 국면이어서 저자나 출판사에서는 우리와 엮인 역사 (경술국치 - 해방)가 다루어졌다면, 판매측면에서 좋았겠지만 진행되고 있는 스토리를 건너뛸 수도 없는 노릇이고.

사실 남의 나라 얘기, 특히 우리와 별로 좋은 기억이 아닌 역사를 공유하는 일본의 근대사라 깊이 알고 싶지 않았지만, 또 알게 모르게 접한 문화 (주로 애니매이션)에서 잘못되거나 미화된 정보도 많기에 이 참에 쉽게 정리해 보는 것도 좋겠단 생각이다.

글은 여전히 객관적이다 못해 냉소적이고, 어린 학생들에겐 못 보여 주겠다는 점도 같다.

그래도 또, 다음 책을 또 기대하게 되는 책.

 

# 19년 8월 서평

골든아워 1 - 8점
이국종 지음/흐름출판

이국종 교수가 대단한 사람인 줄은 알았지만 글도 잘 쓰는 줄은 몰랐는데, 읽고 있으니 필력이 참 대단하네요.
스스로 서문에서 밝히듯 '김훈' 작가를 참 좋아하고 그의 필체를 흉내 내지 않으려 해도 묻어 나올 수 밖에 없었다고 하는데, 

읽는 내내 단문, 단문의 연결이 접속사 없이도 내용 연결이 어색하지 않고 글이 술술 읽히는 것이, 

진짜 김훈 작가 특유의 글 향기가 나는 것도 같았습니다.


'응급 의료' 그 중에서도 '중증 외상' 이란 생소한 분야의 생생한 현장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고, 

그가 치료하는 대상이 유명한 의료진이 의례 그렇듯 '고관 대작', 'vvip' 가 아니라 

우리 주변의 일반적인 서민, 노동자, 형, 동생인 것이 가슴 아프면서도 또한 감사했습니다. 

국가의 시스템이 동작하지 않아 아까운 생명을 잃는 경우를 우리는 최근 몇 년 간 뼈저리게 보고 느꼈고, 

그가 느낀 좌절에 비할 순 없겠지만 그를 응원하는 마음과 이해하는 마음도 조금씩 더해 가고 있습니다. 

아픈 사람을 '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생명'으로 보는 의료 시스템이 그의 '바램'대로 또 우리의 '희망'대로 정착되길 기도해 봅니다.

# 요 몇 달 사이 '닥터 헬기'를 비롯해 몇 가지, 그가 비로소 웃음 지을 만한 지원책이 몇몇 지자체를 시작으로 세워지는 것을 보며 글과 책이 가진 힘 - 사회 인식 전환 - 을 새삼 느낍니다.

 

# 19년 7월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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